유산 이야기를 꺼내면서 불효자처럼 보이지 않는 방법

2022년 12월 30일

아무리 가족 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들이 몇 가지 있다. 돈, 성, 죽음, 정치, 종교 등이 그러하다. 특히 돈에 관련된 대화는 가정 내에서 가장 꺼려지는 대화 주제 중 하나이다. 
하물며 유산에 관한 대화는 돈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하기 어렵다. 만약 부모님이 정정하실 경우 유산에 대한 질문을 했다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바라냐며 핀잔을 들을 수 있고, 부모님의 임종이 가까워지는 순간이라면 부모님이 이렇게 아프신데 너는 돈 생각만 하냐며 순식간에 불효자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가장 궁금하면서도 중요한 이 주제에 대한 대화는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지게 된다.

가족끼리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할 경우 부양에 대한 부담감이 들 수 있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산 상황이 자녀들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거나,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돈 이야기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감정적, 정서적 반응을 수반하기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충돌과 갈등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유산에 관한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이 코앞까지 닥쳐야 그제야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렇게 미루는 방법으로는 갈등과 문제만 점점 더 키울 뿐이다.
예를 들어,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돈의 대화를 하는 경우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 수 있다. 피상속인이 죽음을 앞두고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가족들 또한 한 사람의 죽음 앞에 감정적이고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힘들다. 이렇게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유언이 공개된 경우라면 상속 배분에 불만을 갖는 가족 구성원이 생길 수도 있다. 이는 가정 내 불화의 씨앗이 되곤 한다. 
아예 유언조차 존재하지 않고 돌아가시는 경우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가족들은 고인의 자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혼란스럽고, 알지 못한 채무가 있는 경우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불편한 주제들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수많은 가정의 재정 문제를 상담해온 재정설계 전문가들이 말하는 팁은 다음과 같다. 
가벼운 주제로 시작한다. 만약 유산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면 “친구네 할머니가 이번에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남겼는데…”처럼 가볍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좋다. 다짜고짜 “아빠, 우리 돈 얘기 좀 해"라고 하면 상대방은 불안한 마음에 방어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대화가 긴장으로 시작되면 나머지 이야기도 잘 풀리기 힘들다. 이야기를 가볍게 시작하고 적당한 타이밍이 오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질문을 하면 된다.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데 집중해라. 주제나 질문을 던지고 나면 자신의 입은 닫고 최대한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상대방이 대화를 어디로 이끌어나가야 할지 갈피를 잘 잡지 못한다면 “엄마 나이대 친구들은 보통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하지?”와 같은 가벼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화의 방향을 잡아줄 수도 있다.
대화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라. 돈에 관한 대화를 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대화를 시작한 저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자녀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화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혹시나 아빠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에 대비해서 재정 플랜을 세우고 싶어서야" 와 같이 대화의 목적을 제시하면 상대방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자신의 재정상황에 대하여 오픈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자세히는 묻지 마라. 가족 간이라 해도 재정 상황에 관해 너무 자세히 묻는 건 실례일 수 있다. 대화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굳이 묻지 않는 것이 낫다. 상대방에게도 “굳이 구체적인 금액을 말할 필요는 없어. 그냥 전반적인 상황을 알고 싶을 뿐이야"라는 말을 해줌으로써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것도 좋다.
한 번에 끝내려 하지 마라.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특히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가족이라면 아마 첫 번째 대화는 어색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화를 바탕으로 다음에 어떤 질문을 할지 생각해 보고,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시도하는 것이 좋다. 부모님도 이번 대화를 통해 자신의 죽음 계획이나 유산에 대하여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두 번째 대화를 할 때는 “요즘에는 유언대용신탁도 많이 사용한다고 하네. 이게 뭔지 들어본 적 있어?”와 같은 조금 더 구체적인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이는 비단 돈과 죽음에 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성, 건강 등 가족 간에 터부시 되었던 다양한 주제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가족이라면 감정적 싸움으로 끝날 수도 있고, 주제가 점점 산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대화의 목적이 비난이나 자책이 아니라 상황 개선과 미래 계획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