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줘, 비록 내가 멀리 떠나야 하지만

2022년 11월 11일


멕시코 사람들은 누구나 세 번 죽을 수 있다고 믿는다.
 첫 번째 죽음은 심장 박동이 멈출 때,두 번째는 시신이 묻히고 아무도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때,세 번째이자 마지막 죽음은 이승에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찾아온다.
 
 
영화 코코 (Coco, 2017)는 세 가지 죽음이 있다는 멕시코 사람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미겔은 신발을 가업으로 삼고 있는 가족에서 태어난 아이지만, 신발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음악을 하려 가족을 버렸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고조 할아버지 때문에 집에서 음악은 금기시되는 주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코는 음악 경연 대회에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우연히 망자의 날 때문에 열려 있던 저승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만난 헥터라는 생전 기타 연주자였던 사람을 만나게 되죠. 

멕시코 사람들이 말하는 세번의 죽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죽음 - 심장 박동이 멈췄을 때

헥터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가족이 그의 사진을 재단에 올려놓지 않았기에 망자의 날에도 저승에서 이승으로 갈 수 없는 영혼입니다.
 
두 번째 죽음 - 시신이 묻히고 아무도 그를 볼 수 없을 때

앞에서의 첫 번째 죽음이 의학적인 죽음이었다면 이 두 번째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인의 육신을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기억 속에서만 고인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죽음 - 이승에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헥터는 영원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딸인 코코 할머니가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코코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살아있던 헥터는 코코 할머니가 노쇠함에 따라 최종적인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원히, 정말 영원히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저승에서 만난 헥터가 사라질 거라는 걸 알게 된 미겔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헥터의 딸이자 자신의 할머니인 코코에게, 헥터가 오래전에 그녀의 딸을 위해 불러주었던 노래인 "Remember me"를 대신해서 불러줍니다.
 
아버지인 헥터가 어린 시절 코코 할머니에게 불러주었던 노래를 통해 코코 할머니의 기억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코코 할머니는 노래를 들으면서 아버지인 헥터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travel far​ Remember me​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Know that I'm with youthe only way that I can beUntil you're in my arms again 날 기억해 줘비록 내가 멀리 떠나야 하지만​날 기억해 줘​슬픈 기타 소리가 들릴 때마다​나만의 유일한 방법으로​네 곁에 있다는 걸 알아줘​너를 다시 내 품에 안을 때까지
 
이 노래를 통해 할머니 코코는 아버지인 헥터의 기억을 되찾게 되고, 다시 헥터의 사진이 재단에 올라감으로써 가족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가 됩니다. 헥터는 영원히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게 된 거죠.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떠나갈 때 우리 또한 그를 세 번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의 심장이 멈출 때, 그를 묻을 때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잊게 될 때.

첫 번째 의학적 죽음과 두 번째 사회적 죽음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억함으로써,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그는 영원히 잊히는 세 번째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가 서로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면 영원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 영화는 죽음과 기억을 주제로 잘 풀어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의 저승 세계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내면서 그 세계에서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라는 세계관을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재미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코 할머니가 노래를 통해 아버지를 기억해 냈듯이, 우리도 우리가 사랑했던 이를 리멤버유 추모 공간을 통해 함께 기억해나가는 건 어떨까요?